조유하

오아시스 네일 (2022) 에세이
동국대학교, 한국 영화사 제출용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아이디어가 딱 떠오르지 않을 때는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을 꺼내어본다. 수첩에는 떠올랐던 영감들, 어딘가에서 주워들었던 잡다한 지식들, 여행 가서 꼭꼭 눌러 몰래 모아둔 일기들, 작업할 때 자유롭게 그려냈던 스케치들 등 나의 모든 게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럴 땐 주로 마지막 장을 펼쳐 가장 최근에 관심 갖고 있는 소재부터 쳐다보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브랜드에 관한 스토리들을 많이 찾아봤다. 창업하게 된 계기, 망해가던 브랜드가 갑자기 성공을 거두게 된 계기, 반대로 잘나가던 브랜드가 갑자기 망하게 된 계기 등등. 페이퍼에 작성할 만한 내용들을 정리하다 문득 가장 나다운 것을 하라던 어느 사업가의 문장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남의 것들이 아닌 내 것을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이 페이퍼는 나의 독립의 관한 이야기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을 넘어 홀로 서는 것을 즐기게 된 이야기다.



 뉴욕에 10년 넘게 거주한 사람이 뉴욕에서 사는 최고의 장점이자 단점이 ‘늘 이방인이라는 사실’이라고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나고 자라 15년 넘게 산 한국에서의 동네에선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집 앞을 나가는 일마저 과제가 된다. 그런데 뉴욕에 처음 도착해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큰 해방감을 얻었다. 굳이 타인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크게 튀지도 않아 주목받지도 않고. 아직 뉴요커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나는, 이 도시에 완벽히 속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나는, 옷 가게 종업원이 굳이 먼저 와서 미국인들끼리 주고받는 오버액션을 내게 건네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뉴욕에서 거주한 지 6개월쯤 돼가던 차. 내가 금요일마다 옷을 찾으러 온다는 것을 아는 단골인 런드리가 생겼고, 집 앞 여러 마트 중엔 어디가 생물이 좋은지 어디가 가공식품이 좋은지 구분이 가능해졌다. 배우고 싶었던 도예를 배울 수 있는 클레이 스튜디오도 찾았다. 익숙한 장소가 늘어가는 일들은 좋았지만 한편으론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사라져가는 게 아쉬웠다.




  하루는 문구류를 정리할 수납함을 찾고 있었다. 마음에 들던 수납함이 런던 브랜드 제품이었다. 쇼룸도 런던에 단 하나 있는. 아쉬워할 틈도 없이 나는 런던행 티켓을 구매했다. 미친 짓이었을지 모른다. 여전히 당시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수납함의 실측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원체 성격이 그랬다. 직접 만져보고 먹어보기 이전에 가진 감상들은 ’함부로‘ 가진 감상이라는 생각이라는 들었다. 쇼룸이 가지는 개입성에 큰 매력을 느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난 런던으로 떠났다. 수납함 하나를 보기 위해. 
  룸메이트들과 떨어져 자취를 시작할 예정이었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자립심’과 ‘독립’이었다.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희미해져 가는 아쉬움, 더욱더 완벽히 자립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욕심. 이게 나를 영국으로 이끈 기폭제가 되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열심히 관리받았던 큐티클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지저분해졌다. 런던에 가기 전 손톱 정리를 하기 위해 한 네일숍을 들어갔는데 아티스트 분이 한국인이셨다. 이곳에 한국인이야 넘치지만 왜인지 느낌이 달랐다. 엄마 나이 또래의 여성분이어서 였을까. 한국인은 당분간 만나지 않겠다는 나의 굳은 의지를 무너뜨리고 나는 이내 영국에 갈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완벽히 자립하고 싶어요. 좀 더 새로운 곳에 가서 어색하고 싶어요. 네일 아티스트 분은 내게 뉴욕에서의 완벽한 독립이 뭔지 아냐고 물으셨다. 글쎄요. 자취하면 독립하게 되지 않을까요? 바보 같은 내 답변에 그분은, 인사를 잘 하는 것. 그게 독립이라고 하셨다.



 인사는 서로의 얼굴을 익히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고 태도이다. 쏘리와 하우얼 유가 버튼 누르듯 나오는 이 나라에서 인사란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이방인’을 즐긴다는 이유로 인사도 않고 입을 닫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아파트에 가면 꼭 가드한테 아침 안부를 물으라고. 집 앞 단골 카페가 생기면 갈 때마다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라고. “독립한다는 게 완벽히 혼자가 된다는 게 아니야. 주변에 인사를 물을 사이가 늘고, 힘들면 도울 수 있는 관계가 늘어가는 것. 그럼에도 혼자임을 즐기는 것. 그게 독립이야.” 런던에 가기 전, 젤 네일을 하겠다는 내게 손톱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런던 자체를 바라보고 오라고 그녀는 말해줬다. 손톱 볼 시간에 나무 하나라도 더 보고 오라고. 지나가는 사람 한 명이라도 더 보고 오라고.



 “이사하면 휴지를 사줄 테니 또 와. 런던 가면 계속 멈춰서 사진을 찍어. 뭐든 찍어.” 계산을 하며 나오는 순간까지 내게 그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문장을 남겨주었다. 이름도 오아시스 네일. 난 그곳을 뉴욕의 고향으로 정했다.




2022년 7월 7일

여름학기 Film 수업에 제출하는 페이퍼 한국어 버전. 자유주제, 20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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