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손글씨 하나.
엄마 아빠는 새들도 일어나기 전인 꼭두 새벽에 번갈아가며 내가 잘 자고 있는지 체크하고 갔다. 사실상 잠을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아니라, 허벅지를 꼬집어 꿈인지 생신지 확인하듯 내가 거기 누워있단 사실이 믿기지 않아 여러 번이고 보러 온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부모님이 걸어오는 소리가 거실서부터 들려오면, 새벽 내내 꿈 대신 붙잡고 있던 핸드폰을 숨기고 일부러 잘 자는척했다. 그들의 감동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금명이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비행 내내 엄마 애순이 생각에 엉엉 울어대던 장면이 4년 전 나랑 꼭 닮아서 덩달아 잉잉 울었다. 짐 검사대에서 넣어둔 반지들을 꺼내려 가방 앞주머니를 열었다가 엄마의 편지봉투를 발견하곤 엉엉 울었던 그 4년 전 말이다. 그다지 사연이 있지도 않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게, 울 명분이 의젓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창피해서, 화장실 문을 꼭 닫아놓곤 그 안에서 게이트가 열리기 전까지 엉엉. 계속 울었던, 4년 전 그 순간 말이다.
"라면도 제대로 못 끓이는 너지만 그까짓 거 두어 번 끓이면 쉬워져. 넌 뭐든 배우면 그에 열을 해냈다. 그러니까 엄만 걱정 안 하려고. 모든 일이 다 라면 끓이는 격이다 생각해."
-엄마 편지, 마지막 문장.
엄마가 시집을 갔던 게 딱 지금 내 나이였다. 뭘 알기나 했었냐고 물으면 아빠와 함께면 적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그 미래와 자신의 남편, 그렇게 둘을 알았다고 했다. 엄만 내내 용사였다. 이십 대엔 동기에게 성희롱하는 상사를 처단해야 한다며 동기와 함께 회사를 상대로 싸우다 퇴출을 당했었고, 삼십 대엔 갓 태어난 나를 위해 육아와 맞서 싸워야 했다. 사십 대에 들어선 아빠의 사업을 전격 지원하기 위해 모아온 돈을 전부 아빠에게 넘겼으며, 늦은 오십 대부턴 자신의 노화, 건강과 맞서 싸우고 있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거금을 주고 지원한 영어 시험에 지각해 시험 자체를 응시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인생 첫 지각을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하다니. 스스로에게 화가 너무 난 나머지, 갔던 길 그대로 돌아 집으로 오는 내내 얼굴이 시뻘게진 상태로 상기됐었다. 잇몸은 또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피가 날 정도였다. 엄마가 화를 낸다면 창피함도 모르고 되레 그럴 수도 있지 소리치려던 결심이 무용하게 엄만 화 한마디 없이 나와 아빠를 갑자기 비싼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데려갔다. 개중 제일 비싼 와인 한 병을 시키더니 오늘 창피에 대한 값이라고. 반성 값이라고. 넌 오늘 제일 비싼 와인을 먹었으니까 이날을 잊으면 안 된다고. 이날을 잊지 말고 앞으로 절대 지각하지 말라고 했다.
와인 한 병으로 엄마는 내게 평생 가지고 살아갈 회복 탄력성을 사주었다. 5분 내로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킵 고잉, 그럴 수도 있겠다는 평온함과, 나만 괜찮으면 다 괜찮아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킵 고잉 하는 힘을 갖게 된 거다. 엄마는 내게 무한한 용기를 주었다. 공부가 잘되지 않으면 그냥 덮어버리고 잘 용기, 음식이 젤 중요하다며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살 용기, 경쟁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용기, 해내고 싶은 일이라면 끝까지 가 볼 용기, 되지 않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용기를 주었다.
엄마가 나의 평생을 만들어준 것에 비해 나는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안다. 이기적이게도 자식들은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도. 그래도 그런 그녀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를 위해 사시사철 눈웃음을 지어 보이는 아빠를 위해,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킵 고잉 한다. 무너져도 킵 고잉. 즐거우면 킵 고잉 고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