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하

슬픔이여 안녕 (2024)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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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포장지와 이니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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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중이던 전시

뉴욕이 오고 싶다기보단 네가 보고 싶었을 거야.


 나는 모른다. 네가 인천-뉴욕행 비행기를 몇 번이나 검색해 봤을지. 장장 15시간이나 걸리는 비행을 감내할지 말지를 얼마나 고민했을지. 늘 밟고 살던 땅이 아닌 다른 땅을 밟고 싶은 마음, 낯선 언어들에 둘러싸인 이방인으로써의 쾌락, 바깥세상에 지칠 때쯤 집으로 돌아가면 익숙한 얼굴이 맞이해주는 안락함. 나는 안다. 늘 새로운 곳을 탐색하길 좋아하던 네가 이미 한 번 와 본 뉴욕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겠다는 결심은, 회사에서 주는 유일한 연중 휴무를 나와 함께 보내겠다는 결심은,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가진다는걸.


“넌 사랑을 너무 단순한 걸로 생각해. 사랑이란 하나하나 동떨어진 감각의 연속이 아니란다. 지속적인 애정, 다정함, 그리움이 있지….”
-너가 내게 준 책 <슬픔이여 안녕> 中, 프랑수아즈 사강 저서.


 나는 먼 길 돌아 뉴욕으로 오는 너를 맞이하기 위해 현관을 깨끗이 닦고, 화장실에 락스칠을 했다. 노래도 안 틀었다. 솔이 욕조에 부딪히는 소리가 강해졌으면 했거든. 


 집에 수많은 손님들을 불렀지만 이렇게나 설레는 건 오랜만이더라.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는 일은 기대보다 더 오랜 감내가 필요한 일이었다. 처음엔 고립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외로울 수 있다는 겁의 크기가 너무나도 거대해서, 혼자가 되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억지로 맞지 않는 사람과 친구라고 우기던 1년이 지나고, 그에 데여 스스로를 더 철저히 혼자로 만들던 2년째를 지나, 3년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네가 말했듯이 난 요즘 들어 이십몇 년 들어 처음으로 참 안정적이다. 그런 나의 3년이 쌓인 뉴욕에 나를 잘 아는 12년 지기인 네가 찾아온다는 건 이곳에서 보낸 그 어떤 시간보다도 기대가 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제는 인정하도록 할게. 너에게 뉴욕에서 사는 걸로 은근히 으스댔지만 지난 2년간은 결국 나도 여행객에 불과했다.


 꼭 한 해를 마무리할 때 그 해의 제일 좋았던 영화나 책, 순간이나 요리 등을 기록하는 친구가 있다. 자기는 늘 새해를 특별하지 않게 맞이했다고 하지만 요란한 파티라도 참석해서 공허함을 채웠던 나보다 이 방법이 훨 우아하게 지난해를 보내주고 새로운 해를 환영하는 방식인 것 같더라. 마무리쯤엔 다음 해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와 절대 실천 가능할 아주 소박한 좋은 습관 하나를 생각해야 하는데, 난 ‘좋아하는 것에 이유를 갖는 사람이 되기’로 정했다.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없는 건 큐레이팅 되지 않은 미완의 전시와 같다고 생각해서.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우리는 각종 자극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 당연하게 노출되고 있는 세대에 태어났다. 많은 것들에 뒤섞일수록 그 안에서 나를 찾는 일은 어지러워 멀미가 나곤 한다.

 

 모더니즘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현재는 바로 과거가 되어버릴 수 있고, 미래가 바로 현재가 될 수 있는 모호함 속에서, 모더니즘은 확신하지 않고 끝없이 의심하고 탐구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더라. 나아가는 힘. 그게 모더니즘이라고. 너는 너를 끝없이 의심하지만 의구하는 만큼 또 답을 찾는 사람, 모더니즘. 너는 너를 예술에 현실을 설득시키는, 돈 앞에 패배했을지 모르는 인간이라고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너는 걸어 다니는 예술이다.

 난 지금 암스트레담에서 시작해 헤이그, 로테르담, 벨기에를 돌아 마지막 종착지인 스페인에 와있다. 스페인 남부는 네가 말해준 대로 오렌지 나무에 부딪히는 오렌지빛 햇살이 완벽하게 톤온톤을 이뤄 매 걸음이 절경이다.


 어제는 아무렇게나 걸어 다니다 아무 레스토랑에 들어가 오렌지색 아페롤 스프리츠를 한 잔 시키고 멍을 때렸다. 난 그때도 너한테 여기 참 좋다고 하고 있었네.


  여러 도시들을 지나오면서 네가 추천해 준 갤러리들을 비롯해 하도 많은 갤러리를 다닌 탓에 미술과부하에 걸린 것 같다. 밥도 굶어가며 전시를 보고 돌아온 날엔 침대에 누워 어이가 없어서 큰소리로 폭소한 적도 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여행을 온전히 즐기는 걸 못해서 왜 돈 내고 고생을 하는지 그게 참 웃기더라. 이쯤이면 내가 미술을 소비하는 건지 미술이 나를 잡아먹는 건지 헷갈린다.


근데 있지 수많은 예술작품을 봤지만 어떤 미술 작품을 봐도 너와 나누는 대화보다 재밌는 건 없더라. 너는 가끔 순수한 건지 별거 없는 것을 보고도 동경할 때가 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을 동경하다 보면 너를 찾지 못하고 지칠까 봐 걱정도 됐다. 근데 있지 생각해 보면 동경은 예술적 감상이자, 잠재적인 능력이자, 겸손이다.


 예전엔 겸손과 자신감은 반비례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네가 뉴욕을 떠나기 두 시간 전, 내가 좋아하는 다임즈 스퀘어의 한 와인바에서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겸손한 척하려 부정하는 것보다 잘하는 건 잘한다고 인정할 줄 아는 담백한 태도가 더 겸손한 것 같다고. 자신감과 자존감은 별개라서 그건 부린다고 부려지는 게 아니라고. 잘하는 건 잘하는 거라고. 난 너도 나처럼 자신감을 고민한다는 것에 크게 놀랐다. 누구보다 그 구분을 명확하게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


 난 관심사에 주석을 달 줄 아는 네가 참 멋있다고 생각해왔다. 어느 순간 좋아하는 이유를 댈 줄 모르는 내 취향이 무용하다고 느껴졌다. 너는 늘 선명했다. 내가 외면이 아닌 내면에 집중하자고 결심하게 된 것도 많은 것들이 무용하게 느껴진 탓이 크다. 좀 더 열심히 의미 부여를 하며 살아가겠노라고 올해를 맞이하며 다짐했다.


 벨기에 빈티지샵에서 털 재킷 하나와 요상한 자수가 들어간 셔츠를 하나 샀다. 우리 모두는 조금 촌스럽고 싶은 시기를 지나고 있으니까. 나는 너랑 쿰쿰한 냄새가 풍기는 빈티지샵에 들어가 개중 가장 요상하면서 평범해 보이는 옷들을 고르는 일들이 제일 재밌다. 네가 없어도 그러고 있더라.


 재작년에는 네가 있던 프랑스에서, 작년에는 내가 있는 뉴욕에서 우리 두 해 연속으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네. 문 닫은 레스토랑들을 뒤로하고 작은 에어비엔비에서 삼겹살에 비빔면을 해먹었던 재작년과 다르게 작년은 아주 화려하게 보내서 또 좋았다. 나는 너랑 같이 나이 드는 게 참 좋다. 우리는 ‘너무'와 ‘정말'사이에서 춤을 추며 산다는 모 작가님의 말을 빌려, 너와 함께 걸어간다는 사실이 정말 너무 좋다.

근데 내가 너 옆에 있으면 너무 통통해 보이더라. 살 좀 쪄라.
3, 4


스페인 오렌지 나무, 
스페인 언덕에서 노을

























5,6



2023, 크리스마스 파리
2024, 크리스마스 뉴욕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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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오아시스 네일에세이동국대학교, 한국 영화사 제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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